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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3D 관련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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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3D 관련 원고
  • 미디어몽구
  • 승인 2014.04.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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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3D>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죽어갔던 ‘고통의 8일’ 대신 ‘행복한 8일’로 기억되길 바랬던 정조(正祖 1752~1800)의 화성행차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1795, 총 8권 ) 』를 3D로 복원한 영화입니다. KBS 스페셜로 이미 한차례 방송된 적이 있지만, 극장 상영에 맞춰 전문가 인터뷰 분량은 줄이고 편집을 다시 했으며 청소년 관객들도 친근하게 접할 수 있도록 여진구 배우가 극장판 나레이션을 했습니다.


정조는 11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생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게 되는 임오화변(壬午禍變)을 겪게 됩니다. 할아버지인 영조에게 아버지를 살려달라 눈물로 간청해야 했던 어린 소년은 ‘죄인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쓴 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비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조선 22대 왕으로 즉위한 정조는 조용한 개혁에 착수합니다. 반대파들의 눈을 피해가며 새로운 인물을 등용했고, 중국과 서양의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습득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신분차별 폐지, 임금노동제 도입, 빈민구제, 시장경제 도입 등 근대적 향기가 묻어나는 개혁안들을 속속 실행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1795년,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61세가 되자 6천여 명의 수행원과 1400필의 말이 동원된 왕의 행렬은 창덕궁을 출발하여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수원으로 향합니다. 선두행렬, 어가행렬, 후미행렬 등 자리 배정은 엄격했지만, 이 축제는 ‘행행(行幸)’, 즉 ‘행복한 행차’라 불렸고, 당시엔 왕을 보는 것을 ‘관광(觀光 : 빛을 보다)’이라 했는데, 행차에 나선 왕을 관광하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어 일시적으로 통행금지를 해제하고 천막으로 된 임시숙소를 마련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8일간의 축제 기간 동안 과거시험을 통해 지방선비들에게 관직에 진출할 기회가 주어졌고 노인들을 초대한 양로연이 열렸으며 가난한 자들에게는 쌀과 죽이 나눠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국왕이 직접 백성들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해 주기도 했던 행차의 하이라이트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라고 합니다. 그동안 금기시 되던 것들이 허용된 파격적인 자리로 남녀가 한자리에 모인 최초의 궁중잔치였으며 전통적인 궁중무용 외에 검무, 선유락 같은 민간 무용이 왕실에 첫 선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정조는 끊임없이 자신을 반대하며 위협하던 세력들에게 칼 대신 술을 내렸고 화합을 권유했습니다.

정조는 행차 동안 백성들의 삶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여러가지 지침도 내렸다고 합니다.

  • 왕의 수라상은 10여 그릇이 넘지 않도록 할 것.
  • 먼 곳의 진귀한 음식을 구해서 바치지 말 것.
  • 음식의 맛은 시중의 습속을 따르고 사치하거나 화려하게 하지 말 것.
  • 각 참(站)에서는 개인적으로 물건을 진상하는 것을 금할 것.
  • 악공과 춤추는 사람의 복식은 깨끗이 하되 화려하게 하지 말 것.
  • 잔치 음악은 간편하게 하고 악기는 서울과 화성에 있는 것을 보수해서 쓸 것.

이날의 축제는 8일 동안 계속되었고 8권으로 이루어진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빠짐없이 기록되어 전해졌습니다. 워낙 꼼꼼한 기록 덕분에 국내 최초 3D 조선역사 다큐멘터리인 <의궤, 8일 간의 축제 3D>로 다시 우리 눈 앞에 축제가 벌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어린 소년이 이윽고 왕이 되어 정적들과 함께 그 무덤을 찾는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행차 외적인 면을 복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인터뷰 내용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공중지사 (公中之私) 사중지공(私中之公)

공익을 내세운 사사로운 마음으로 아버지 사도세자를 음해했던 세력들을, 아버지를 잃은 데서 시작한 정조의 사사로운 마음이 결국 백성들도 똑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나라를 개혁하는 공적인 의로움으로 끌어안았습니다. (이게 보도자료와간담회 등에서 이끌려 나온 결론인데 오늘날의 상황에 비추어 이렇게 맺으면 좀 이상할 것 같으니 마무리는 내일 인터뷰에서 나온 말을 참고해서 몽구님이 정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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