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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눈속에서 벌벌떨며 새우잠 자던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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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눈속에서 벌벌떨며 새우잠 자던 노숙인
  • 미디어몽구
  • 승인 2010.01.05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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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서울역까지 거닐며 본 풍경

어제 하루 눈폭탄 제대로 맞았습니다. 이제부턴 한파휴우증에 시달려야 합니다. 저는 눈이 올때마다 가장 먼저 찾는곳이 있습니다. 대학로 낙산이죠. 대학로 뒷쪽에 위치한 낙산공원에 오르면 서울의 중심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답답할때나 확트인 상쾌함을 얻고자할때 낙산에 오르곤하는데 어제 낮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때 이곳을 찾았습니다.

하얀 눈밭세상으로 변한 서울을 보니 와~ 감탄과 함께 내 마음도 하얗게 정화 되더군요. 나무에 덮인 눈꽃들 사이로 내리는 함박눈은 황홀함까지 안겨 주었습니다. 갈등과 대립의 구조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곳을 하얀 눈이 하나로 통합시켜 주니 고맙기도 했지요. 함께하는 순간, 더 큰 하나가 되는 세상..꿈 만은 아니구나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처럼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그 속으로 들어가면 현실은 그렇지 않죠. 무릎 밑까지 쌓인 눈을 밟으며 낙산공원에서 바라 본 서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잠시 접고, 현실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낙산공원에서 서울역까지 거닐다보면 내 눈에 어떤 풍경과 이야기들을 펼쳐볼 수 있을까.. 사뭇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대학로 -> 종로 -> 광화문 -> 시청 -> 숭례문 -> 서울역 이 코스로 거닐기로 했습니다.

거북이 운행을 하는 차량들과 쌓인 인도 위 눈속에서 한줄로 서서 이동하는 시민들, 눈싸움 하는 아이들, 제설작업하는 아저씨들..폭설이 쏟아질때 보는 흔히 볼수있는 풍경들 입니다. 시선을 잠시 다른 곳으로 향해 보겠습니다.

대학로에 나와서 종로 5가로 들어서니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오토바이를 타고 음식배달을 하는 한 배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헛바퀴가 돌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가는데, 이런날 굳이 배달을 해야하고, 주문을 받아야고, 시켜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더군요.

각박한 세상 이겨 내려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겠지만, 가슴 아프게 했던건 길을 건너려고 신호대기를 했는데, 배달원의 발목이 빨갛게 얼어 보이는것이었습니다. 손은 입김으로 녹일 수 있다지만 발목은 그러질 못하죠. 배달원이 그러더군요..그만 두지 않는 이상 주문한 고객에게 음식 잘 배달해 주고 조심히 다니자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화사거리에서 종로5가역까지 거닐다보면 형편은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진짜 서민은 어딜가서 우리가 서민이야 말 안한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이분들이 진짜 서민들입니다. 삼륜차에 옷감을 싣고 옷 공장으로 향하거나, 리어커에 폐지를 가득 싣고서 폐지 재활용 공장으로 들어가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눈폭탄을 맞으면서도 쉴 수 없이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분들이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가장 생각나는 사람이 노숙인일겁니다. 종각역 출구 밖에서 쌓인 눈을 걷어낸뒤 벌벌 떨며 잠을 청하는 한 노숙인을 만났습니다. 우산으로 내리는 눈을 막고, 마트 비닐 봉지로 벽을 쌓은뒤 쭈그린체 새우잠을 자고 있었는데 몸을 보온해 주어야할 옷은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근처를 지나는 사람들과 제설 작업하는 공무원 경찰 취재진 모두 본인일에 충실할 뿐, 이분은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 됐습니다. 걱정이 앞서 조심스레 그분께 다가갔습니다. 노숙인들이 말하는.. 추운날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준다는 소주와 과자를 편의점에서 구입한뒤 말입니다.

아저씨였습니다. 말도 잘 알아듣고, 의사표현도 잘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동사사고 나면 어떻하실려고 추운날 이곳에서 잠을 청하느냐, 종각역 안으로 들어가서 쉬시거나 을지로역으로 가시라고 했더니, 그곳에 들어가면 쫒겨 난다고 했습니다. 춥더라도 이곳에 있는게 마음 편하다면서 인생의 앞날에 두려움이 없다고 자포자기 하듯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알았다하고 지나치면 나중에 뉴스에서 이분 소식을 들을꺼 같아, 계속 설득했습니다. 계속되는 제말이 귀찮았던지 을지로로 갈테니까 잔소리 그만하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바람막이 봉지를 가방에 넣은뒤 저보고 가던길 가라해서 알았다 하고 가는척.. 빌딩에 숨어 지켜보니까 진짜 을지로입구역쪽으로 향했습니다.

시설에 적응을 못해서 안들어가는지, 단체 생활에 불편을 느껴 안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원인과 사연이 있으니까 시설로 들어가지 않는거겠죠. 원칙을 미리 세워놓고 이곳에 들어와 적응해라 하는것보다, 이분들의 생활환경에 맞는 원칙을 세워 차츰 변화시키게 끔 시설에서도 고민해 줬으면 합니다.

아저씨를 보내고 광화문으로 향하는길. 야광색 우비를 입은 경찰들이 제설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제설 장비가 경찰 방패였습니다. 얼어버린 눈을 깨고 쓸어 미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방패가 유용하게 잘 쓰이더군요. 올해엔 경찰의 방패가 이런곳에 더 많이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새로운것을 볼 수 있었는데, 방패에 경찰이라고만 써 있었던게 법 질서로 바뀌었더군요.

신호등에서 우체부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옷에는 온통 흙탕물이 가득 묻어 있었는데, 가슴 한켠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리본을 달고 계시더군요. 그걸 보는 순간 아버지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뭉클했습니다. (제 아버지도 집배원으로 시작하셨기 때문에...)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배달 끝내고 우체국으로 들어가는 길이라며 골목길 다닐때 위험했다고 말씀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연하장을 많이 전하지 못해 오늘 같은날 배달한 보람이 별로 없으시다고...

제 아버지 얘기도 하면서 어릴적 집배원 자전거 앞에 타고 아버지와 두루 돌아다녔다는 추억의 보따리를 잠깐 풀어줬더니 아저씨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이처럼 거리에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묵묵히 제 할일하시는 분들과 얘기하다 보면 참 순수한 분들이시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고지서 배달원으로 인식되지 않게 끔 저도 지인들에게 편지도 가끔 써야겠습니다. 항상 길조심 하시라고 말한 뒤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는데...

광화문광장 있던 일부 시민들.. 뿔난 뒤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스케이트장에 스케이트 타러 왔는데 내리는 눈 때문에 휴장해야 했기 때문. 아이들 데리고 온 시민들은 어이없어 했습니다. 이런날 스케이트 타야 제맛인데, 어떻게 손 놓고 있었길래 휴장하냐며 씁쓸해 하더군요. 더 이상 긴말하지 않아도 서울시의 대처능력을 알수 있는것이겠죠.

서울역 지하도. 노숙인들이 이불을 몇겹 둘러쌓고 그 안에서 꼼짝하질 않고 있었습니다. 부디 무사히 겨울나길 바랬습니다.

2년전인가 년전인가 서울에 눈다운 눈이 내렸을때에도 대학로에서 서울역까지 거닐어 보니 눈 덮인 서울의 빛과 그림자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몇년이 지난 지금 좀 더 나은 풍경을 볼 수 있으려나 꼼꼼히 보며 거닐었는데도 전과 달라진게 없었습니다.

사회의 그늘속에서 힘겹게 겨울나기를 하시는 우리 이웃분들.. 혹한 날씨에 이분들도 "오늘은 그냥 집에서 하루쯤 쉬자" 생각할 수 있는 여건을 나라에서 만들어 주었으면 합니다. 어제 하루 청담동, 학동사거리 스키어와 스노보더 기사가 화제가 되는게 아닌, 이런 날씨에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보려는 이분들의 가슴 찡한 사연들로 여러 사람들이 열심히 살자는 다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기사들이 많이 쏟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새해 다짐을 어제 했습니다. 한번도 만나지 못한 이분들과의 스쳐 지나가는 인연 속에서 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가를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2010년 새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하루 몸으로 고생하시며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가득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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