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8:09 (금)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분이셨습니다.
상태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분이셨습니다.
  • 미디어몽구
  • 승인 2009.08.18 14: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인생사를 한눈에

민주주의의 실천가이셨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산 증인을..이렇게 보내 드릴순 없습니다. 슬픔보다 더 가슴속에 끓어 오르는 분노를 삯일수가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지켜달라 호소하던 분께서 아무것도 보지 않으시고 그냥 가버리면 어떻하십니까...

제가 지금 이순간 할일이 뭔가 찾아봤더니 생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었습니다. 네티즌 여러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분이셨습니다. 지난 2006년 11월 역대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김대중 전시 기념관이 개관 하였을때 가서 찍은 사진 입니다.

무심하네요...하늘이시여...
진정 신은 존재한답니까...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시기념관인 김대중전시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명숙 국무총리를 비롯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이용섭 행자부장관,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정창연 연세대총장등 5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갖었다.

개관식에서 한명숙 국무총리는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지키며 살아오신 김 전 대통령의 삶을 기념하는 뜻 깊은 공간으로서 의미가 크며 우리 후손들은 김전 대통령의 친필 메모속에서 통일과 평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개관식 기념식을 마치고 축하객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전시실을 둘러본후 기념촬영을 끝으로 개관식 행사를 마쳤다. 김대중 전시실은 김 전 대통령이 기증한 각종 사료 500여점, 대통령 재임 때 해외 정상들로부터 받은 선물 183점, 김 전 대통령 기증 장서 3000여권, 각종 영상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개관식이 열리기전 김대중 도서관에서 배포해준 참고자료를 보며 한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피는 꽃인 인동초라 불리는 김 전 대통령의 '인동초'인생사를 돌아봤다.




꿈을 가진 소년.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에서 태어난 김대중은 어린 시절 바다를 좋아한 섬 소년이었다. 넓고 푸른 바다는 그에게 큰 이상을 심어 주었고 자연의 섭리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았던 학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1936년 9월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을 시키기 위한 어머니의 결정으로 김대중 집은 목포로 이사했고 부모님의 뜻에 부응하듯 김대중의 학업 성적은 우수했다. 1945년 해방이 된 이후 청년 김대중은 중도적 노선에 입각한 정치활동을 하며 1947년부터 해운업을 시작하였고 사업에 성공해 청년 사업가로서 명성을 쌓았다고 한다.










민주화 : 고난과 승리의 길.

김대중은 이승만 독제체제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자 김대중은 올바른 정치 실현을 위해서 정치가가 되기로 결심, 처음으로 1954년 총선에서 목포로 출마 했다. 그리고 56년 민주당에 입당한 김대중은 연이은 낙선으로 많은 고난을 겪었으며 1961년 5월 13일 실시된 선거에서 3전 4기끝에 처음 당선 되었으나 5.16 군사 쿠테타로 인해서 헌정이 중단되어 국회의원으로서 활동을 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고 적혀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게 기네스증서인데 1964년 김준연 의원이 한일국교협상과 관련해 박정희 정권이 비밀회담을 통해 일본자금 1억3000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발언을 해 박 전 대통령이 국회에 김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를 요청했고 당시 국회의원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구속동의안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에서 무려 5시간19분 동안 쉬지 않고 연설을 했는데 이게 '최장시간 국회연설'로 기네스북에 오른 것이다.

1970년 9월 신민당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에서 김대중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다. 40대 기수를 내세운 김대중의 당선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고 온갖 부정선거 속에서도 46%를 득표한 그는 국내외적으로 새로운 국가 리더로서 부각 되었다. 72년 10월 17일 유신 선포당시 일본에 체류중이던 김대중은 해외에서 반유신 운동을 하기 위해 망명한다.

1973년 8월 8일 일본 동경에서 김대중은 납치 실종된다. 생사를 알수 없던 김대중은 8월 13일 동교동 자택으로 돌아와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게 되는데 해외에서 김대중의 반유신 활동이 성공을 거두게 되자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대중을 납치 살해 하려고 했던 것이다. 미국의 개입으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이 사건은 한국의 비 민주적인 현실을 국제적으로 알리는데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김대중은 5번의 죽을고비(50년 한국전쟁당시,71년 의문의 교통사고,73년 2번의 납치사건,80년 사형선고)를 넘기면서도 화해와 용서의 정신을 항상 강조 하였다고 한다.이밖에 김대중은 정치활동을 하면서 5차례에 걸쳐서 6여년동안 감옥 생활을 하였고 10년 여의 망명및 연금 생활등의 고난을 겪었다.

전시실에는 김대중이 80년 사형선고를 받은 후 감옥 생활을 할때 사용한 옷과 물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극단적인 고난의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민주주의, 평화통일을 위한 집념.

4차례의 도전끝에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어 헌정사상 첫 여야 간 정권교체를 이루어냈다. 외환위기 속에 대통령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4대개혁(금융,기업,공공,노사)을 강력히 추진하여 성공적으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정보화 추진등으로 한국을 경제 우등생이라는 국제적 평가를 받게 했다. 재임중 국가인권위원회법,의문사진상규명법,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법률의 제정,여성부 신설등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에도 크게 기여했다.

재임 기간중 남북화해정책(햇볕정책)을 꾸준히 펼쳐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공시킴으로써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는데 이는 김대중 대통령 인생사에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실에는 남북공동선언문 사본과 서명에 사용되었던 만연필이 전시되어 있으며 뉴스위크지와 북한 로동신문등이 보도한 자료들과 북한에서 발행된 기념우표,기념주화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빌게이츠 회장이 선물한 휴대폰과 서태지가 선물한 CD,스티븐호킹박사가 선물한 책,2002년 월드컵 멤버들의 싸인이 든 축구공등이 전시장 한켠에 전시되어 있다.







글로벌 김대중 노벨 평화상과 인류가치.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일반적으로는 한국과 동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인권, 특별히 지적하자면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한점을 인정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에서 수십년간 독재통치가 계속되는 동안 여러차례의 생명 위협을 받고 오랜기간 국외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지도적인 대변자로 점차 부상하며, 한국과 버마,동티모르등 아시아의 민주화와 인권,남북화해정책의 공로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코너를 돌아 들어서게 되면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기간 동안 받은 훈장들과 세계 각국 정상과 정치지도자들과 찍은 사진이 한쪽벽에 전시되어 있고 맞은편에는 각종 상들이 걸려있다. 맨 끝 코너에는 노벨 평화상 상장과 기념주화,우표,메달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 2층에 마련된 특별 전시실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각국의 국가원수나 유명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국가 재산이지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대여해 전시하고 있으며, 국정운영,한반도 평화통일,민주주의 인권에 관련된 사료전시실,취임이전 각종 연설,언론인터뷰,대외발언등의 구술자료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고 지하1층에는 김 전 대통령이 직접 기증한 장서 16.000여권의 자료등을 열람하여 민주,평화,통일 및 한국학 등의 연구를 할수 있는 공간으로서 국제 학술회의 장소로도 사용이 가능하게 돼 있다.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 관람은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곤 관람이 가능하며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용 대상에 상관없이 관람할 수가 있다. 찾아가는길은 신촌역 8번출구나 홍대입구역 5번출구에서 직진으로 10분 거리에 있다. 홈페이지 http://www.kdjlibrary.org



☞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게시판 바로가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