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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KBS 이사회 '숨바꼭질'에 녹초가 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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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KBS 이사회 '숨바꼭질'에 녹초가 된 하루
  • 미디어몽구
  • 승인 2008.08.22 0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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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후임 사장 공모 후보 24인에 대한 서류심사'를 예고한 KBS 임시이사회, 일정은 지난 21일 오전 9시에 본관 층 제1회의실로 예고됐지만, 이곳에서 곱게 열릴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여의도 KBS 본관으로 향해 일찌감치 취재를 준비하면서도, 지난 1일 이사회 당시 기습적으로 '마포가든호텔'로 장소가 변경됐던 사례를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낙하산 사장'을 막겠다는 KBS노조와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이하 KBS 사원행동)'이 이사회 개최 저지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KBS 이사회 측이 변칙적으로 장소를 바꿀 가능성을 계산해둬야 했다.



여의도 → 역삼동 → 상암 → 여의도, KBS 이사회의 숨바꼭질

예상대로, KBS노조와 KBS 사원행동은 본관 층에서 청원경찰과 대치한 가운데, 오전 8시를 기해 실력 행사에 나섰다. 그속에서 예상은 현실로 드러났다. 이사회 장소는 갑작스레 서울 강남 역삼동의 노보텔앰버서더 호텔로 변경된 것이다. 이 '장소 변경'이 더욱 심상치 않았던 이유는, 야당 추천 KBS 이사들은 이사회 개최 장소 변경 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전달받고 나중에야 이동했다는 것이다.

취재 환경이 열악할 수 밖에 없는 우린 주머니를 털어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때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택시비의 '서막'이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KBS 이사회라는 공적인 회의가 기습적으로 잦은 회의장소 변경을 감행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급하게 도착한 노보텔앰버서더 호텔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20대는 족히 돼 보이는 전경버스가 인근 도로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호텔 정문과 로비에는 정복과 사복을 가리지 않고 수백명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위압감이 절로 느껴졌다. 엄연한 사적 영업장소에서 이래도 되는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호텔을 찾은 몇몇 외국인들도 신기하다는듯이 그 광경을 바라봤다.

하지만, KBS 이사회 측은, 엉뚱하게도 호텔의 '영업 부담'을 취재기자들에게 떠넘겼다. 갑작스런 이사회 장소 변경 탓에 호텔까지 찾아온 취재기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되지 않는 기자와 수백명의 경찰 병력, '호텔의 영업'에는 누가 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까? 야당 추천 이사들의 경찰 병력 철수 요구에는 응하지 않았던 KBS 이사회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2층 프로방스홀에서 '병풍'까지 쳐가며 이사회를 하는듯했던 KBS 이사회는, 정오 경에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엔 장소도 알려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볼 수 밖에 없었다. 희미하게 포착된 '개최 가능성 장소'는 서울 상암동 DMC에 위치한 KBS미디어센터, 이번에도 눈물을 머금고 주머니를 털어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곳에는 아무도, 말 그대로 아무도 없었다.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공영방송의 이사회가 이런 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택시비도 택시비지만, 그 서글픈 현실에도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렵게, 다시 한번 어렵게 이곳저곳 통화를 시도하면서 알아낸 이사회 개최 장소는 다시 여의도였다. 여의도 KBS이사회 6층 회의실에서 열린다는 것이었다. 상암에서 다시 여의도까지, 우리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다시 주머니를 털고 택시를 탔다.

참고로, 통화를 시도한 곳 중 한 군데는 KBS 노조였다. 전화를 받은 여성은 '이사회 변경 장소'를 묻는 나에게 사무적인 말투는 고사하고 내 말을 툭툭 끊으려 하며 '모르쇠'를 강조하더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서로 친분을 나누며 취재정보를 공유하면서 취재차량으로 발빠르게 움직이는 기성언론 기자들과는 달리, 우린 곳곳에서 난관을 만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사회 측의 순간적인 장소변경 판단 때마다 비장하게 주머니를 털어야 하는 신세였다. 늘 마주하는 순간이었지만, 이날만큼은 왠지 더욱 강하게 의식됐다. 하지만, 다시 한번 괜찮다는 생각을 해본다. 늘 그래왔으니까.

"밤 새서라도 심사하겠다"더니 2시간 만에 '5배수 압축' 끝

그렇게 해서 다시 도착한 KBS 본관. 기자들의 출입은 아예 봉쇄됐다. 하지만, 오후 시 0분을 넘겨 야당 추천 이사들이 퇴장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자들은 미친듯이 뛰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지원자가 24명이나 되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장 후보를에 대한 면접 과정을 다음주쯤 거치는 것도 필요하지 않느냐"는 야당 추천 이사들의 주장에 대해 여당 추천 이사들은 "오늘 안에 결정해야 하니 밤을 새서라도 끝내겠다"고 주장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여당 추천 이사들은 24명의 공모자를 5명의 후보로 줄이는 작업을 단 2시간 만에 끝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듯 놀라운 '작업 속도'를 과시한 뒤에는 청원경찰의 엄중한 호위를 받으며 화물엘리베이터를 통해 본관 1층 매점으로 내려가 준비된 차를 타고 KBS 본관을 빠져나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 KBS 이사회는 그 5명의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대한 택시비만 허공에 날린 채, 우리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KBS 본관을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KBS이사회는 오는 25일 월요일에 5명의 후보자에 대한 면접을 거친다고 한다.

'착착' 진행되는 KBS 후임 사장 임명 과정, KBS의 미래는?

KBS노조는 낙하산사장 선임 반대에 대한 총파업을 결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KBS이사회는 '숨바꼭질'과 '청원경찰'을 이용해 망설임없이 사장 선임 작업에 나서고 있다. 청와대는 "후임 KBS 사장 인선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과연 몇이나 믿을 수 있을까.

여러번 택시를 타면서 가벼워진 주머니도 걱정이지만,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그렇듯 혼란을 겪고 있는 방송의 미래였다. KBS는, MBC는, YTN은 모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수백명의 경찰이 KBS이사회에 동원됐던 강남 노보텔앰버서더 호텔에서의 광경이 내내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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